오늘 같이 살펴볼 작품은 손원평 작가님의아몬드입니다.

 

책에 대한 간단한 줄거리, 같이 이야기해볼 점, 인상깊은 구절 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1. 아몬드, 간단하게 살펴보자

문학은 공감을 통해 독자가 느끼는 것이 많은 장르로 알려져 있지만, 이 작품의 상황 설정은 조금 다릅니다. 주인공 윤재는 여느 문학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과 만남과 이별을 반복합니다. 하지만, 윤재는 편도체가 선천적으로 작아 분노, 공포 등을 잘 느끼지 못하도록 태어났습니다. 그렇기에 진행되는 이야기에 보다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윤재는 어렸을 때 엄마와 할머니와 같이 지냈습니다. 겉으로 보면 여느 가정과 비슷해 보이지만, 윤재가 정서적으로 장애가 있다는 판정을 받고 어머니는 윤재가 평범함을 연기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합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이브에 시내로 나왔다가 묻지마 살인 사건에 휘둘리게 되어 윤재는 그 자리에서 할머니를 잃고, 엄마는 중태에 빠집니다. 이러한 윤재에게 손을 내민 건 심 교수입니다. 그리고 교수의 아들 곤이도 만나게 됩니다. 윤재가 감정이 없는 소년이라면, 곤이는 감정이 과잉된 소년입니다. 사회에서 괴물이라 인식되는 둘은 나름의 방식으로 친해지게 됩니다. 그 둘이 서로의 영향을 받아 중화될 즈음 어머니가 눈을 뜨며, 그걸 바라보는 윤재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장면이 묘사되며 소설은 끝이 납니다.

 

2. 인상깊었던 구절과 감상

작품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구절을 공유하려 합니다. 해당 구절에서 조금 더 이야기 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첨언을 하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구절만 남겨주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저 멀리 얼어 있는 전경들이 보였다. 마치 남자와 엄마와 할멈이 한 편의 연극이라도 벌이고 있다는 듯 모두들 꼼짝 않고 바라보기만 했다. 모두가 관객이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62p)

 

작중에서 괴한이 윤재의 엄마와 할머니를 공격하는 장면을 묘사한 부분입니다. 아마 위험한 상황에 최대한 참여를 꺼려하는 대중들의 모습이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을 무작정 비판할 수는 없습니다. 흉기를 들고 있는 사람을 제압할 수 있는 시민의 수는 적고, 그 자리에 있을 확률은 더 낮을테니까요.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윤재가 자신도 대중 속의 한명이라고 평가하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 소중한 존재가 눈앞에서 공격을 받고 있음에도, 선천적으로 공포가 결여되어 있기에 그 상황을 사실로만 받아들여야 하는, 아이이기에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는 무력감 등이 느껴졌습니다.

 

초점은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대한민국의 현실로 옮겨 갔다. 누가 죽었는지 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63p)

 

묻지마 살인, 그 결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장면입니다. 특정 사건이 일어나면 언론 등은 자연스럽게 그 사건을 보도합니다. 많은 보도들은 가해중심으로 보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해자의 신상, 과거, 범죄 이유, 형량 등. 일부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하지만, 더 자극적이 찾는 사람들은 가해자의 관상을 운운하거나, 사회적 구조의 문제 등을 운운하는 등 물어뜯을 거리를 찾는 경우가 많다고 느낍니다. 특히 SNS 상에서요. 이 현상의 이유는 너무나 다양하겠지만, 바라봐야 하는 대상이 외면당하고 잊혀지는 것에 대해서 질문을 던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마치 이 세상에 정해진 답은 없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남들이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한다고 해서 꼭 정해진 대응을 할 필요도 없는 게 아닐까 모두 다르니까, 나같이 정상에서 벗어난 반응도 누군가에겐 정답에 속할 수도 있을 지도 모른다. (75p)

 

우리들은 정답을 찾는 방법을 중심으로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시험에서는 물론이고, 남들과 다르게 행동할 때 배척당할 수 있다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해왔습니다. 최근에는 재미로 한 것이겠지만, MBTI 등을 통해 사람의 성격조차 특정 틀에 넣어 설명하려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우리가 끊임없이 정답을 찾는 이유는 안정감을 찾기 위함이라 생각합니다. 정답이라 여겨지는 행동에 중점을 둘 때, 더 나은 성취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해당 문구는 정답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삶의 맥락은 모두 다르기에 같은 행동이라도 다르게 받아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일관된 행동이 때로는 오답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담이지만, 근래에 많이 사용된 중 하나가 이라 생각합니다. 타인을 대할 때 선을 지켜야 한다는 맥락에서 많이 사용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선의 기준은 내가 아닌 타인에 의해서 정의된다 생각합니다. 쉽게 상처를 받는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항상 누군가의 선을 넘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온/오프라인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받는 일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엄마는 늘 집단생활에는 희생양이 필요하다고 얘기했었다. 엄마가 내게 그 지난한 교육을 시킨 것도, 내가 그 희생양이 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었다. (88p)

 

윤재가 사회에서 타인에 비해 감정을 날 표현하지 못하기에,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으로 여겨지기에 어머니가 이런 말을 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려운 이야기지만, 다르다는 것과 틀리다는 것을 구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종종 다른 것을 무서워하거나 어색하게 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엄마는 더 오래 살았기에, 이러한 상황을 많이 봐왔기에 자식만큼은 다름이라는 이유로 상처를 덜 받고자 했기에 평범해지는 법을 가르친 것은 아닐까요?

 

예감이란, 사살은 매우 인과적인 데이터다. (93p)

 

여기서 말하는 예감은 직감으로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책의 맥락과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다른 책에서 직관에 대해 설명한 부분이 있기에 조금 얘기해드리려 합니다. 직관의 중요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칩 히스와 댄 히스는 자신의 저서 자신 있게 결정하라에서 다만 직관에 의한 결과가 명확하고, 이에 대한 피드백이 꾸준히 제공될 수 있으며, 결과들이 서로 독립적인 안정된 상황에서는 충분히 지식이 길러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의학에 대해서는 경험에 의한 직관은 옳지 못한 판단 도구입니다. 예를 들어 응급실에서의 결과는 피드백이 지속적으로 제공될 수 없기에 순간 순간의 판단은 발전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도 치료 효과가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직관, 경험이 아니라 엄밀하게, 올바르게 수집된 데이터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책방은 수천수만명의 작가가 산사람, 죽은 사람 구분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인구 밀도가 높은 곳이다. (132p)

 

줄거리 진행과는 관련이 크게 없는 대목이나, 조금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어 해당 구절을 기록해봤습니다. 책은 작가에 따라 담고 있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게는 명저이더라도 또 다른 사람에게는 평범한 책보다 못하게 읽힐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책을 추천한다고 하는 것이 아닌, 책을 같이 살펴보자고 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종종책 추천이라는 명목 아래 권위 있는 분들이 특정 책을 읽어보라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책은 다 읽어봐야 느껴지겠지만, 때로는 그 책이 도움이 안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도 실제로 느낀 점도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베스트셀러를 고를 때 특히 쉽게 관찰됩니다. 베스트셀러를 살 때도 무조건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닌 단지 많이 팔린 도서임을 알고 책을 본다면, 보다 여러분이 읽고 싶었던 책을 고르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더 이상하거나 흥미진진한 것들로 아이들의 관심은 늘 바뀌었으니까. (139p)

 

타고난 음치가 오페라의 아리아를 멋들어지게 불러 청중의 갈채를 받는 것도 불가능하겠지하지만 연습을 하면 말이다서툴게나마 노래 한 소절쯤 부르는 것 정도는 가능해진단다그게 바로 연습이 허용하는 기적이자 한계란다. (160p)

 

윤재는 평범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배우고 있다는 장면에서 나온 대사입니다. 연습은 완전함에 도달할 수는 없으나 그 일부를 모방할 수 있다는 점을 전하고 있습니다. 노력으로 성취하고자 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개 타고난다는 것은 재능과 결부되어 묘사됩니다. 그렇기에 노력해봐야 큰 의미가 없다는 비관적인 시선도 나오고, 특정 분야에서는 재능이 중요한 지점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작품에서는 결여를 타고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윤재의 입장에서 남들처럼 감정을 완전히 표현하지 못하더라도 필요한 순간에 적당한 감정 표현만 할 수 있다고 해도 성공적이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평범함이 소원이지만, 그 과정이 험난한 것을 알기에 위의 대사가 나온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린 서로를 닮을 수는 없었다. 나는 너무 무뎠고, 곤이는 제가 약한 아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고 센 척만 했다. (171p)

 

그런데 그날따라 의문이 들었다. 사랑이라는 말이 저렇게 흔하게 쓰여도 되는걸까. (175p)

 

이 대사는 TV에 나온 가수가 팬에게 사랑한다고 하는 것을 보고 느낀 윤재의 감정입니다. ‘사랑이라는 말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쉽게 이야기를 하면 너무 가벼워 보이고, 그렇다고 가족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기에는 살짝 망설이게 되는, 신기한 말인 것 같습니다. 저는 사랑의 필요조건은 유대라고 생각합니다. 또 이를 위해서는 감정을 솔직하게 나누는 과정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윤재가 저렇게 느낀 것은 감정을 솔직하게 나누지 못해왔기에 저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척하는 사람들, 그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244p)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게 없다고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245p)

이 문장이 아몬드 작품에서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고, 이 문장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 문장을 읽고 공감이라는 말에 대해서 다시 고민해봤습니다. 공감은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대의 감정과 같아지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감정 표현의 단순화로 이러한 부분들이 조금 무시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유사한 것과 같은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으니까요. 한편, 공감이라는 말은 다양한 형태로 많은 사람들에게 소비되었습니다. 언젠가부터는 공감이 선택적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자신과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때로는 공감을 억지로 요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타인과 내가 다른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데 자신과 같아야 한다는 생각 또는 자신과 같았으면 하는 소망으로 감정의 표현이 잘못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작중에서는 감정을 격하게 표현한 곤이가 공감을 요구하며 폭력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실제로 작가님도 한 인터뷰를 통해서 공감한다는 말이 너무 쉽게 쓰이고 있다고 생각함을 밝힙니다. 그렇기에 공감하거나 이해하기 전에 타인을 너무 쉽게 정의하지 않았음을 바라신다고 말했습니다. 단어는 사용될수록 그 본연의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된 단어는 우리들에게 혼재된 형태로 인식되어 마치 유행어처럼 단어를 사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들도 공감이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사용하지는 않았는지, 공감을 잘못된 형태로 풀어내지는 않았는지 한번쯤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내 얼굴 위에 눈물방울이 떨어진다. 뜨겁다. 델 만큼. 그 순간 가슴 한가운데서 뭔가가 탁, 하고 터졌다. 이상한 기분이 밀려들었다. 아니 밀려드는 게 아니라 밀려 나갔다. 몸속 어딘가에 존재하던 둑이 터졌다. (248p)

 

그러니까 내 말은, 어쩌면 넌 그냥 남들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자란 것일수도 있다는 뜻이야. (252p)

 

자란다는 것은 변한다는 뜻일까요. (252p)

 

그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가 될지는 나도 모른다. 말했듯이, 사실 어떤 이야기가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당신도 나도 누구도, 영원히 말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딱 나누는 것 따윈 애초에 불가능한 건지도 모른다. 삶은 여러 맛을 지닌 채 그저 흘러간다. 나는 부딪혀 보기로 했다. 언제나 그랬듯 삶이 내게 오는 만큼. 그리고 내가 느낄 수 있는 딱 그만큼을. (259p)

 

제가 웹툰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한 작품에서 이러한 말이 있었습니다.

 

나는 행운을 바라지 않았다. 예측 범위 밖의 일이라는 점에서 본질은 불행과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삶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때로는 행복하며, 때로는 불행하겠지만 이들을 우리가 쟁취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상황적 요인이 개입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누군가에게는 행복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불행한 것이 될 수도 있는 만큼 그 기준은 매우 상대적입니다. 259p에 나온 저 문장은 작품의 가장 마지막에 적혀 있습니다. 아마 이 문장은 운 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통제 가능한 감정과 상황에 대해서만 마주하며, 나머지는 흘러가는 대로 두겠다는 윤재가 내린 나름의 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생각은 우리들이 조금 더 부담 없이 지내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느꼈습니다.

 

3. 맺으며

 

작중에서 윤재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으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윤재는 부족한 부분을 마주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자기가 내린 나름의 답으로 도달합니다. 결핍은 자칫 부정적으로 들릴 수 있는 단어입니다. 그렇지만 완전한 사람은 없기에 누구나 부족한 점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에서 윤재가 자신의 결핍을 마주하고 나아간 것처럼, 우리들도 이 소설을 보고 누군가가 내린 정의에 맞추어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정답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을 읽어 주신 분들에게는 나름의 고충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글이, 이 소설이 정답이 보이지 않는 길을 가다 지칠 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작가님의 인터뷰를 보고 싶으신 분들은 여기를 눌러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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